연습이 습관이 되는 조건

연습이 끊기는 자리를 들여다보면 의지보다 동선이 먼저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뚜껑을 열어 두는 일, 같은 시각에 앉는 일처럼 사소한 준비가 다음 날의 연습을 결정합니다. 오래 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조건들을 정리했습니다.
의지가 아니라 동선
연습이 끊기면 대개 의지 부족을 탓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들여다보면 마음보다 동선이 먼저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뚜껑 위에 책이 쌓여 있고, 의자는 다른 방에 가 있고, 오늘 칠 악보는 서랍 안에 있다면 연습은 시작하기도 전에 다섯 걸음쯤 멀어집니다. 그 다섯 걸음이 매일 반복되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시작의 문턱을 낮추는 준비
뚜껑을 열어 두기, 의자를 제자리에 돌려 놓기, 다음에 칠 악보를 펼쳐 두기. 사소해 보이지만 다음 날의 나에게 남기는 가장 확실한 메모입니다.
연습을 마칠 때 다음 시작점을 표시해 두는 방법도 좋습니다. 어디서부터 칠지 정해져 있으면 앉자마자 손이 움직입니다. 무엇을 할지 고르는 시간이 길수록 앉기까지의 거리도 함께 멀어집니다.
오래 치는 사람들의 공간에는 대체로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대단한 장비를 갖췄다기보다, 앉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 하나씩 치워져 있는 쪽에 가깝습니다.
짧게, 자주, 같은 시각에
한 번에 한 시간을 확보하려다 아무것도 못 하는 날이 반복되면, 연습은 특별한 일이 되어 버립니다. 특별한 일은 특별한 날에만 하게 됩니다.
십 분이라도 같은 시각에 앉는 편이 오래갑니다. 저녁 설거지 뒤, 등교 준비 전처럼 이미 몸에 붙은 일과 옆에 붙여 두면 따로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습관은 분량보다 반복에서 만들어집니다.
빠진 날을 만회하려고 다음 날 두 배로 치는 방식은 대개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루를 건너뛰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다음 날 평소만큼 앉는 일입니다.
기록은 채찍이 아니라 지도
연습 기록을 남기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며칠 만에 그만둡니다. 기록이 잘한 날과 못한 날을 채점하는 도구가 되면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몇 분 쳤는지보다, 어디가 막혔고 다음에 어디부터 볼지를 한 줄로 적어 두는 편이 쓸모 있습니다. 다시 앉았을 때 그 한 줄이 오늘의 출발점을 대신 정해 줍니다.
소리를 내도 되는 시간
집에서 치는 사람에게는 이웃이라는 조건도 빠지지 않습니다. 마음 놓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대가 정해져 있으면 연습 계획 자체가 단순해집니다.
공동주택이라면 관리 규약에 안내된 시간대를 먼저 확인해 보시고, 늦은 시간에는 약음 페달이나 헤드폰을 쓸 수 있는 조건을 함께 갖춰 두면 좋습니다. 눈치를 덜 볼수록 연습은 더 자주 이어집니다.
결국 오래 치는 사람과 그만두는 사람을 가르는 것은 재능보다 조건인 경우가 많습니다. 조건은 마음먹기와 달리 하나씩 손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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