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놓인 피아노의 내력

피아노가 무대의 악기에서 집 안의 가구가 되기까지, 그 자리는 계속 조금씩 옮겨 왔습니다. 벽에 붙여 놓는 순간 소리가 퍼지는 방향과 가족이 연습을 듣는 방식까지 함께 달라졌습니다. 우리 집 거실에서 피아노가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이유를 되짚어 봅니다.
응접실의 악기가 집 안으로
피아노가 처음부터 집 안의 물건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몸집이 크고 값이 만만치 않아, 오랫동안 연주회장이나 살롱처럼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의 악기에 가까웠습니다.
사정이 달라진 것은 현을 세로로 세운 업라이트 형태가 널리 퍼지면서였습니다. 눕혀 두어야 했던 몸통을 세우자 차지하는 바닥 면적이 크게 줄었고, 벽에 붙여 놓을 수 있게 되면서 피아노는 악기이면서 동시에 가구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집에 피아노가 있다는 말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위한 악기와, 저녁마다 식구 중 한 사람이 앉는 악기가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벽을 보고 앉게 되면서
업라이트는 등판을 벽 쪽으로 돌립니다. 연주자는 벽을 마주 보고 앉고, 소리는 등 뒤로 퍼집니다. 공간을 아끼는 대신 듣는 방식이 함께 바뀐 셈입니다.
그랜드는 반대로 뚜껑을 열어 소리를 방 안쪽으로 보냅니다. 같은 곡을 쳐도 두 악기가 다르게 들리는 데에는 조율 상태나 현의 길이만이 아니라, 이 놓임의 차이도 한몫을 합니다.
가족 중 누군가 연습을 시작하면 나머지 사람은 등을 보며 소리만 듣습니다. 거실의 피아노가 종종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인 풍경을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거실이 고른 자리
우리 집에서 피아노는 대체로 거실 한쪽 벽에 놓였습니다. 텔레비전 맞은편이거나, 베란다로 통하는 창 가까이거나. 방이 아니라 거실을 고른 데에는 손님에게 보이는 자리라는 이유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기이면서 살림의 얼굴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위에는 액자가 올라가고, 옆으로는 소파가 붙고, 언제부턴가 뚜껑 위에 우편물이 쌓입니다. 그렇게 피아노는 집의 풍경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습니다.
다만 창가 벽은 바깥 공기와 가까워 온도와 습도가 자주 흔들립니다. 사람의 편의로 정한 자리가 악기에게는 가장 변덕스러운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뚜껑을 여는 사람의 자리
요즘은 거실을 서재처럼 쓰거나, 방 하나를 음악방으로 비워 두는 집이 늘었습니다. 피아노의 자리도 보여 주는 자리에서 오래 앉아 있게 되는 자리로 조금씩 옮겨 가는 중입니다.
결국 어디에 두느냐는 누가 얼마나 자주 뚜껑을 여느냐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아무리 잘 어울리는 자리에 놓여 있어도 아무도 앉지 않는다면, 그 피아노는 가구로만 남습니다.
반대로 조금 좁고 조금 어수선해도 지나갈 때마다 손이 가는 자리라면 소리는 계속 납니다. 집 안에서 발이 가장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 그곳이 피아노의 자리입니다.
집을 옮기거나 가구 배치를 다시 할 일이 생긴다면, 어디가 보기 좋은지와 함께 어디가 앉기 좋은지도 한 번쯤 같이 생각해 볼 만합니다. 자리를 정하는 일은 결국 앞으로 그 악기와 어떻게 지낼지를 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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