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은 왜 1년에 한 번인가

조율 주기를 1년으로 잡는 관습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피아노가 계절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겪는 변화가 대체로 그 주기에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든 피아노에 같은 숫자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쉬지 않고 당겨지는 나무 상자
피아노 뚜껑을 열면 200개가 넘는 현이 팽팽하게 걸려 있습니다. 현 하나가 감당하는 힘은 크지 않지만, 전부 더하면 십수 톤에 이르는 장력이 나무로 짜인 몸통을 밤낮없이 당깁니다.
그 힘을 받아내는 향판과, 현을 붙잡고 있는 핀 블록은 대부분 목재입니다. 금속과 달리 목재는 주변 공기의 수분을 머금었다 내놓으며 부피가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조율이 흐트러지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연주를 하지 않아도 사정은 같습니다. 피아노는 소리를 내는 시간보다 그냥 놓여 있는 시간이 훨씬 길고, 그 시간 내내 계절의 영향을 받습니다.
계절이 한 바퀴 도는 시간
한국의 실내 습도는 난방을 켜는 겨울에 크게 떨어졌다가 장마철에 다시 올라갑니다. 습도가 오르면 향판이 부풀며 현을 밀어 올리고, 습도가 내려가면 가라앉으면서 장력을 놓습니다.
1년이라는 주기는 이 왕복이 한 바퀴 끝나는 시간입니다. 조율은 특정한 날의 소리를 붙박아 두는 작업이 아니라, 한 바퀴 돌면서 어긋난 만큼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귀는 천천히 어긋나는 소리에 적응한다
음정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몇 달에 걸쳐 조금씩 내려앉기 때문에, 매일 그 피아노 앞에 앉는 사람일수록 변화를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조율을 마친 직후에 "원래 이런 소리였나" 하고 놀라는 분이 많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소리가 갑자기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지를 그제야 듣게 되는 것입니다.
미루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해 동안 손대지 않은 피아노는 전체 음높이가 기준보다 눈에 띄게 내려가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한 번에 기준까지 끌어올리면 장력이 급하게 변하면서 소리가 다시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대략적인 높이까지 먼저 올려 두고, 자리를 잡은 뒤 다시 맞추는 두 단계를 밟게 됩니다. 한 번이면 끝났을 일이 두 번이 되고,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늘어납니다.
1년은 기준이지 규칙은 아니다
새로 들인 피아노,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피아노, 오래 쉬었다가 다시 치기 시작한 피아노는 더 자주 봐야 합니다. 특히 새 악기는 현과 목재가 자리를 잡는 동안 변화가 빠릅니다.
레슨실이나 연습 공간처럼 하루에도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피아노라면 반년 안팎을 기준으로 잡는 편이 안전합니다. 반대로 거의 치지 않는 피아노라도 습도 변화는 똑같이 받으므로, 안 친다는 이유만으로 건너뛸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건반이 유난히 무겁거나 특정 음만 탁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조율과는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방문 전에 미리 말해 두면 한 번에 함께 살펴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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